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벙커힐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경과 == 6월 17일 오후 3시, 윌리엄 하우 소장이 이끄는 영국군이 찰스타운 반도 남반부 연안에 상륙했다. 하우는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대륙군을 깔보고 경보병 부대에게 해안가와 가까운 대륙군 진지를 공격하게 했다. 그러나 이 공격은 대륙군의 거센 저항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며 격퇴되었다. 그제야 적의 방비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걸 알게 된 하우는 본대를 이끌고 정면 공격을 개시했다. 대륙군은 탄약이 부족해 곤경을 겪었지만 용감히 맞서 싸웠고, 결국 영국군의 두번째 공격 역시 격퇴되었다. 본래 이런 공세는 포병대의 지원 사격이 선행되어야 했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영국 포병대가 소지하고 있던 6파운드짜리 대포에 12파운드짜리 포탄이 지급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포격이 이뤄지지 않아 공세 실패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영국군 좌익은 찰스타운 마을 남쪽에 집결하고 있다가 대륙군 저격수로부터 총격받아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에 하우는 해군에 저격수들을 제거하는 데 협조해달라고 요청했고, 해군은 즉시 찰스타운 마을을 포격하게 한 뒤 해병대를 상륙시켜 마을에 불을 지르게 했다. 그러나 상당수 저격수들은 찰스타운 마을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은신처에 몸을 숨긴 채 영국군을 저격해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이후 윌리엄 하우 소장은 보스턴으로부터 추가 병력을 증원받은 뒤 보루와 대륙군 중앙에 대한 세번째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대륙군은 탄약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고 지원군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저항할 여력을 상실하고 브리즈힐과 벙커힐에서 패주했다. 이때 조제프 워렌 소장은 대륙군이 탈출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 병사들과 함께 후미에서 적군과 맞서 싸우다가 한 영국군 병사의 총검에 찔러 죽었다. 퍼트넘 소장은 전열을 재정비하려 했지만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어쩔 수 없이 오후 5시 경에 찰스타운 반도를 포기하고 케임브리지의 요새화된 위치로 후퇴했다. 이리하여 영국군은 찰스타운 반도 장악에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